슬기로운 지식생활

서대문 형무소의 어제와 오늘

미네르바minerva 2020. 12. 10.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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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은 여름을 지나 가을로 가는 길목이지만, 한낮은 아직 한여름의 태양을 간직하고 있었다.

 교과서에 실린 6·10만세운동의 발자취를 쫒다보니 「서대문 형무소」라는 이름이 무겁게 다가왔다.

10여년전에 지척인 홍제동에 살면서 그곳은 지나쳐가던 버스정류장에 불과했던 곳이었다.

 독립문 공원 깊숙한 곳에 서대문 형무소가 있다는 사실 또한 처음 이번에 관심을 가지면서 처음알게 되었으며, TV를 통해서만 보았던 그곳을 방문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고등학생인 딸아이와 (평일인 관계로 학교에 현장체험학습 보고서를 제출하기로 함) 9월 13일

서대문 형무소를 찾았다.

 미리 조사해보니 매주 월요일은 정기 휴관일이며, 여름철(3월~10월)은 9:30~18:00시까지, 겨울철(11월~2월)은 9:30~17:00시까지 관람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3호선 독립문역 5번 출구로 나와 독립문 공원쪽으로 걸어가다보니, 독립문을 지나, 독립관을 마주하며, 잠시 묵념을 하고, 5분쯤 걸어오르니 붉은 벽돌로 빼곡이 채워진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앞에 도착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좁았던 입구와, 다소 스산한 느낌마저 들었던 높은 벽은, 그 벽하나 너머의 세상과 바깥의 세상이 많이 달랐었었구나하는 이질감으로 상징되어 보였다.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으로 들어서면, 여러개의 건물들과 짙은 잔디밭이 반겨주는데, 딸은 예전에도 이렇게 공원처럼 지어져 있었냐며 신기해했지만, 역사관을 모두 둘러본후에야 일부, 다시 복원되어 시민들에게 개방된것임을 알게 되었고, 사진을 통해 본 예전의 모습들이 얼마나 삭막하고, 신음소리와 원한들로 가득찬 곳이었는지 알게되고는 몸서리가 쳐진다고했다.

 

 

 전시관 2층에는 민족저항실 Ⅰ,Ⅱ,Ⅲ관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Ⅱ관은 독립운동가들의 수형기록카드를 전시한 곳으로 사진과 함께 간단한 신상이 적혀있었다. 벽면을 가득채운 사진들속에서 무표정과 비장함마저 짓눌린듯한 삼엄함마저 느껴져, 나와 딸은 먹먹함에 네모난 공간을 빙글 돌아보며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전시관 지하에 있는 지하고문실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취조 과정에서 자행되었던 각종 고문 도구들과 실상을 전시하고 있었다. 우리가 찾은 것이 평일 낮이라 관람객이 그리 많지 않았던 관계로 고문실앞에 우리둘뿐 아무도 없었는데, 음산하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갑자기 무슨 소리가 나는것같아 소스라치게 놀라며 둘다 뛰어나왔다.

 눕지도 않지도 못하게 세워져있는 나무관과 같은 벽관 감옥은 인간이 인간에게 그런 벌을 내릴 생각을 했다는사실 자체도 끔찍할 정도였다.
그안에 들어가서 문을 닫아보니, 정말 옴짝달싹 할수 없는 생고문이었다.


 중앙사로 들어서니 제 10·11·12옥사가 부채꼴처럼 펼쳐져있어, 한자리에서 감시와 통제를 하도록 설계되어있었다. 각방에는 2018‘이달의 독립운동가’를 기억하는 방들이 각 월별로 선정되어 역사와 독립운동가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실제 방에 들어가보니 정말 비좁고, 열악하여 그좁은 공간에 많게는 50명까지도 수용되었었다고 한다.

 

 예전에 대서양 노예 무역시대(16~18세기)에 서아프리카 노예를 배에 싣고 오기위해 노예를 짐쌓듯이 켜켜이 쌓았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불과 백여년전에 이런 만행이 저질러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끔찍했다.


 공작사와 추모비를 지나니, 사형장이 눈에 들어왔다.

 서대문형무소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사형장이다. 구치소 안 재소자 운동장의 담벽을 끼고 신작로를 따라가다가 속칭 ‘지옥의 삼정문’이라는 삼거리에서 교도관들이 사형수를 오른쪽으로 인도하면, 예의 그 죽음의 집에 도달한다. 높은 벽돌담장으로 둘러싸인 교수형장(絞首刑場)

인 서울구치소의 사형장은 열다섯 평가량의 왜식 목조건물. 그안으로 들어서면 담쟁이 덩굴이 한층 음산한 기운을 내뿜는다.

 

 그앞에 서있는 미루나무는 1923년 사형장 건립당시 식재되었으나 독립운동가들이 독립을 이루지못하고 사형장으로 끌려가면서 통곡을 하였다고하여 ‘통곡의 미루나무’로 불리고 있다.

 사형장 안쪽에 같은 시기에 심어진 미루나무는 독립운동가들의 한과 원통함이 서려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지금은 잘려나간 밑둥만 남아있다.

 

 막연히 드라마나 예능에서나 보던 서대문형무소와 막상 현장을 찾아서 간접경험을 해본 그곳은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섰다가, 지금까지 그러한 역사를 모른채 무심하게 살아온 무지함이 부끄러웠고, 이렇게 치열하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의인들이 있어 지금의 내가 우리가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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