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지식생활

연극 < 늙은 부부 이야기>

미네르바minerva 2020. 12. 1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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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 시대를 맞이하여, 유튜브에서 실시간 라이브로 공연하는 연극을 볼 수 있었다.

 늙은 부부 이야기는 2003년 초연이후 스테디셀러로 꾸준히 사랑받은 연극공연으로써, 2020년 8월에는 공연영화로 개봉되기도 하였다.

 

 대문을 열고 들어오면 좁지만 마당이 있고, 툇마루로 빙 둘러싼 본채와 주로 예전에 세를 주던 건넌채를 사이에 두고 너른 평상하나가 있다.

 30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남들에게 만만히 보이지 않기 위해 욕쟁이 할머니로 억척스럽게 세 딸을 키워 출가시킨 이점순(이화영)과 역시 20년 전 부인과 사별하고 두 아들을 키웠지만, 무관심에 외로운 박동만(정한용)이 이점순의 집에 세 들어 살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런 서로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털어놓는 장면에서, 아픔과 외로움을 보듬어줄 수 있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과거 국밥집을 하면서 인연이 있었던 이점순을 박동만은 마음에 두고 있지만, 이점순은 동네사람들의 수군거림이나 시선이 영 마음에 걸려, 거리를 두려고 한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열고, 서로를 향한 황혼의 끝사랑, 직진 사랑이 시작된다. 서로를 향한 마음은 점점 깊어지지만, 자식들 눈치가 보여 항상 조심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행복한 시간도 잠시, 이점순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점순과 신혼여행가자며 공부했던 운전면허증을 7번 만에 따고, 홀로 이점순의 사진 앞에서 미안하다며 우는 넋두리는 가슴이 먹먹해지고 뭉클했다.

 

 나는 현재 지천명(知天命)을 앞둔 나이로, 한사람의 아내이자, 딸·아들을 둔 부모이며,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뒷바라지하는 것이 인생의 전부인것처럼 바쁘게 살아왔다.

 이제 좀 아이들이 크고 나니, 남편과 둘이 여행도 가고 브런치도 먹으러가고, 강아지 산책도 시키며 둘이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마치 연극 『늙은 부부 이야기』에서 배우들이 연기했던 부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실재의 요소이다. 가끔씩 드는 생각이지만, 부부라서 이럴땐 좋다하는 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연극속의 이점순이나 박동만같은 나이가 되기 전이고, 사별을 하지도 않았지만, 연극을 감상하면서 가상의 요소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연극 『늙은 부부 이야기』는 단순히 나라면 어땠을까? 라는 의문을 넘어서서 내가 딸이나 아들며느리라는 자식의 입장이라면 두 분의 관계를 인정하고 축복할 수 있었을까? 순수하게 그렇지만은 못했을 것 같다. 속물 같겠지만, 금전적으로나 혹은 자식의 도리를 해야 할 순간에 피해를 보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반대로 내가 이점순이었다면? 자식들의 그런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외롭고 쓸쓸한 황혼에 찾아온 사랑을 자식들 눈치보느라 보내야한다면, 너무 서운하고 섭섭할 것 같다.

 

 이렇듯 연극은 인간의 삶의 근원적 경험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그것은 신비로운 신화의 세계일 수도 있으며, 고귀한 인간의 삶이거나 아니면 평범한 인간사일 수도 있다.

 내가 본 연극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라 처음에는 여기에서 놀이성을 찾을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직 내가 겪지 못한 일들을 극중 배우를 통해 간접으로 겪으면서, 가상적 세계와 실재 사이가 이런식으로 존재하고 섞여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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