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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네시 윌리엄스의 < 유리 동물원>

미네르바minerva 2020. 12. 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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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 주인공인 로라 윙필드의 성격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되는, 어머니 아만다 윙필드의 성격과 행위를 그녀가 자라고 성장했을 1900년대 시대적 사회배경과, 1930년대 미국 상황을 비교하고 살펴봄으로써, 분석하고 이해해보고자 한다.

  1900년대는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넘어가는 시기였으며, 아만다 윙필드와 같이 부유한대농장 소유주는 사회 지도급 인사들이었으며, 산업사회에 넘어오면서 ‘신흥부자들’인 산업가들과 혼담이 오가고, 결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대농장 소유주들은 본인들이 정통상류층이며, 산업가들을 졸부 취급하는 경우도 많았다.

  1930년대는 1차 세계대전 이후 시작된 미국발 경제대공황 사태가 몰아쳤다.

  미국 대공황에서 볼 수 있듯이 물가가 하락하기 시작하면 임금이 따라서 하락하기 어려우므로 기업들은 노동비용이 크게 증가하고 대부분 부도를 맞게 된다. 이는 물가하락을 부채질하는 악순환을 가져온다. 대공황이 직업에 미친 영향은 경제활동인구의 절반이 실업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일을 하고자하는 노동인구는 많아지고, 일자리는 줄어들게 되므로, 고용주는 노동자를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글의 해설자이자 아만다의 아들 톰 윙필드의 상황까지 설명이 되는 대목이다.

출처 네이버

 

 어둡고 칙칙한 그리고, 흉측스럽기까지 한 아파트에서 윙필드가의 세모자가 살고 있다.

  먼저 윙필드가의 실질적 가장인 톰 윙필드는 홀로 가족을 부양해야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으며, 대륙제화라는 신발공장의 창고에서 일하고 있다. 이러한 책임감에서 벗어나고 싶은 톰은 매일 밤 댄스클럽과 영화관을 전전하며,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다.

  톰의 어머니인 아만다 윙필드는 부인과 자식을 버리고 마음가는대로 훌쩍 떠나버린 남편을 원망하며, 자신의 처녀시절 즉, 아버지를 만나기전으로 시계를 되돌려 남부의 대농장 영애였던 화려한 시절만을 회상하며 살고 있다. 혹시라도 남편처럼 떠나 버릴까봐 전전긍긍하며, 온갖 잔소리와 회유로 아들을 들볶는다.

출처-네이버

  마지막으로 로라 윙필드. 로라는 유리 동물을 모으며,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다.

  그녀는 신체적으로는 절름발이라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 사실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그녀 본인에게는 열등감과 자괴 감을 증폭시키는 가장 큰 비극이다.

  아만다는 톰보다 누나인 로라를 경제적으로 자립시키기 위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실업학교 상과에 보내지만, 다른 타이프라이터들의 엄청난 속도에 놀라 복통으로 쓰러진 로라는, 용기가 없어 가족에게 말도 못하고, 학교를 계속 다니는 척 거리와 공원을 쏘다닐 정도로 유약한 사회 부적응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고교시절 친구사귀는 것이 힘들어 외톨박이였던 로라를 ‘푸른 장미’라고 불러주던 첫사랑 ‘짐 오코너’가 집에 온 것이다.

  로라 스스로는 자립이 어렵다고 판단한 아만다는, 적당한 남성에게 시집을 보내는 것이 완전한 독립이 될 것이라는 계산 하에 톰의 친구 오코너씨를 집으로 초대한 것이다.

출처 - 네이버

 

  유쾌한 식사 분위기 속에서 , 어색해 하던 로라 또한 마음을 역고, 자신이 가장 아끼는 ‘유리 동물원’을 소개한다. 골목 건너편 댄스홀에서 흘러나오는 왈츠에 춤을 추다가 탁자에 부딫혀 그녀가 가장 아끼던 일각수의 뿔이 부러지고 만다. 불길한 징조였던걸까? 분위기가 무르익어 둘이 입맞춤을 하게 된다.

  하지만 짐이 이내 약혼녀가 있는 본인의 현실을 자각하며, 그녀에게 사과하고 떠난다.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버린 순간, 아만다는 저주에 가까운 악담을 톰에게 퍼붓고, 여동생에 대한 책임감과 아련함으로, 가슴속의 끓어오르는 열망을 짓누르며 지내던 톰은 그 연결선을 싹뚝 자르고, 그의 아버지처럼 훌쩍 떠나버린다.

 

 아만다는 자신의 화려했던 청춘을 그리워하고, 자신만의 사고방식을 절대 고칠 생각이 없는, 소위 요즘말로 ‘라떼는~’을 일삼는 꼰대이기도 하다. 자식을 사랑하고,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물론 강하지만, 그 과정과 방식이 매끄럽지 못해서, 사사건건 아들톰과 부딪힌다.

  결국은 자식에게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기보다는 가혹한 현실을 벗어나고, 짐을 덜기 위해, 적당한 인물을 모색하여 책임을 넘기려던 건 아닌가 싶다. 물론 그녀 또한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선천적으로 장님에 벙어리였던 헬렌켈러의 어머니나, 선천성 사지 무형성 장애로 두 다리와 세 개의 손가락이 없이 태어난 김세진군을 입양하여, 장애인 국가대표 수영선수로 키워낸 양정숙 여사처럼, 혹독하고 어려운 과정이었지만, 엄마가 독한 마음을 먹고, 훈련을 통해 아이를 꿈꾸게 하고, 희망을 갖게 하는 역할을 했다.

  극복하게 하는 힘, 불안하지만 그래도 도전하는 과정을 알게 해주었더라면, 신체적 결함 때문에 생긴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않았을까?

  로라는 장애 때문에 친구도 직업도, 애인도 없이 혼자만의 세계에서 유리동물들을 손질하고, 자식을 버린 아버지가 남긴 유품인 축음기를 들으면서 갇혀 지낸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자기만의 세계에서만사는 그녀를 아만다와 톰은 걱정하지만 로라는 아무것도 바꾸려하지 않는다. 그런 그녀를 현실의 세계로 한 발짝 인도한 것이 그녀의 첫사랑 짐이다.

  그는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열등감을 가지는 건 이 세상 모든 평범한 인간들 또한 마찬가지라는 덤덤한 톰의 위로에 로라는 마음을 열게 된다. 나는 독자로써 거기에서 희망의 빛을 보았다. 마음을 열고 대화하는 로라를 보며, 짐의 키스를 받아들이는 그녀에게서.

  하지만 정말 기쁨도 찰나였다. 일각수의 뿔이 떨어져나가, 평범한 말이 되어버렸는데, 로라는 그 말을 떠나는 짐의 손에 쥐어주고, 결국 로라에게는 그 뿔만 남은 것이다. 평범하고 정상적인 것은 내보내고, 결국 그녀는 현실에는 없는 뿔을 가지고 다시 뒤돌아 자기만의 벽장 속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근 것이다.

  로라는 왜 원망도 미움도 분노도 없는 것일까? 왜 혼자만 오롯이 모든 슬픔과 절망을 끌어안기를 택한 것일까?
로라!! 당신이 장애를 가지게 된 건 당신 탓이 아니에요. 그냥 단순히 아팠던 것뿐이고, 지금 현재의 당신은 충분히 아름답고, 활짝 핀 장미꽃 같은 스스로를 못 보는 게 너무 안타까워요‼️

  어디든 어느 곳이든, 유리동물원의 동물들이 아닌, 누군가와 소통했다면, 나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보면서 위로받고, 또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줄 수도 있는 섬세하고 자상한 로라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내면의 아픔과 절망의 경험을 통해, 로라는 그 누구보다도 공감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타고 났을 것 같다는 생각이 짐과의 대화를 통해 짐작케 했다.

 그녀는 남을 배려할 줄 알고, 기다릴 줄 알며, 남동생과 엄마사이의 갈등이나 문제를 중재하는 노력 또한 게을리 하지 않았다. 1930년대의 시대상황이 인간 그 자체를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기보다는, 인간의 노동력을 기계가 대체한 상황에서 인간 또한 기계처럼 일을 하고 돈을 버는 도구일 뿐 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세상이었다.

 기계처럼 타이핑을 하고, 장애인임에도 배려는커녕, 혹시라도 피해를 줄까 싶어 발소리조차 숨죽였던 로라였다. 그녀의 지나온 시간들은 성인이 되어도 결코 세상 사람들과는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처럼, 기름아래 아늑한 물속 세상만이 그녀의 유리 동물원, 그녀의 유일한 세상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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