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지식생활

<일리아스, 영웅들의 전장에서 싹튼 운명의 서사시 2 >

미네르바minerva 2020. 12. 20.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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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을 보고는 전장에서 운명의 여신이라도 만나는 걸까? 하는 말도 안 되는 기대로 책장을 열고는, 제대로 줄거리가 펼쳐지기도 전에 작가가 미리 소개한 <들어가기 전에>부분이 12쪽이나 되니, 읽기도 전에 나가떨어질 지경이었다. 너무도 어려운 이름과 지명의 나열에 몇 장 읽다가 다시 앞으로 갔다가를 반복하다가 3권에 이르러서야 한숨을 돌리게 되었다.

출처 네이버

 

  7권까지 읽고 나서, 영화『트로이』를 보게 되었다.

 물론 저자의 말대로 책과는 다른 내용이 많았고, 신들도 등장하지 않았지만, 각각의 주인공들의 모습이 그려지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영화를 보고나서, 과제할 부분을 다시 한 번 읽으니, 정말 영화의 장면들처럼 전투장면에서는 병사들의 함성과 발걸음 소리가, 뿌연 먼지 가득한 사이로, 치열한 전투가 펼쳐지며, 이마에 돌을 맞아 눈알이 땅으로 떨어지는 경우나, 심장을 창에 찔리고 쓰러진 전사에게서 그 창이 심장 뛰는데 따라 꿈틀대며 움직이는 것 같은 기이한 장면들처럼 영화에 없던 장면들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내가 과제로 정한 부분에는 아킬레우스의 활약상이나, 전투장면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사실 일리아스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자신을 공개적으로 모욕한 아가멤논에게 분노한 아킬레우스가 전투참가를 거부하고, 초반에는 아킬레우스가 없이도 잘 싸워나가던 희랍군은 지지부진한 전투 속에 점점 지쳐가고, 이를 보다 못한 아킬레우스의 사촌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의 옷을 몰래 입고, 전투에 참가하지만 결국 헥토르에게 죽음을 당하게 된다. 이에 분노한 아킬레우스는 전투에 나가 헥토르를 죽이고, 시신을 끌고 다니며 모욕을 하지만, 시신을 돌려주고, 본인도 파리스의 활에 맞아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영화[트로이]- 트로이의 목마 .출처 네이버

 

  아킬레우스는 트로이로 향하기 전부터 이미 죽을 것 이라는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었다. 그는 죽을 운명인 것을 알고도 전장터로 향하고, 후세에 길이 남을 명예를 선택했고, 선택한 후에는 뒤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갔다. 우리는 어떠한 선택을 할 때, 굉장히 많은 고민과 계산을 한다. 대부분의 경우 단 하나도 놓지 않으려는, 손해 보지 않으려고 재고 갈등한다. 요즘 속된말로 ‘결정 장애’라는 말은 이런 욕심에서 생겨난 신종용어가 아닐까 싶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문자 없이 창작되어 오랜 세월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는 사실이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구전 설화나 구전민요처럼 우리 민족들이 생활 속에서 향유해온 문학작품도 있다.

 

  여기서 서사시나 설화의 공통점은 조상들의 꿈과 낭만, 웃음과 재치, 생활을 통해서 얻은 교훈, 역경을 이겨내는 슬기와 용기 등이 문학적으로 형상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문학적으로는 물론 언어, 신앙, 풍습, 정신사적인 면에서도 연구 검토해야 할 귀중한 자료인 것이다. 그때 당시에는 병사가 하나의 직업이고, 계급이어서 왜 이렇게 치열하게 싸우는지, 멈추고 싶어도 자의로는 되돌릴 수 없었다.

 단지 한나라 국가라는 공동의 목표와 이름 앞에 나아갔던 수많은 선조들의 희생과 죽음이 켜켜이 쌓여, 『역사』가 되었으며, 그렇게 입으로 혹은 문자의 기록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져, 그 역사를 바탕으로 오늘날에도 새로운 대서사시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런 선조들의 모험과 정복이 명예를 위해서든, 복종이었던 앞으로 나아가려했던 정신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우리가 있다. 물론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인간의 목숨을 사유소모품 정도로 여기는 몇몇 지도자들이 분명히 존재했으며, 순간의 실수나 잘못된 판단으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의 그러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으며, 스스로 자정의 능력을 갖게 된 것은 아닐까? 아직도 국가를 혹은 국민을 개인소유로 여기는 지도자들이 존재하지만, 그렇지 않은 수많은 지도자와 종교, 시민단체들의 인도주의적 개입과 자정의 노력을 통해, 하나의 인류로써 나아가야 할 것이다.

 

  지금 전 세계는 유례없는 COVID-19라는 큰 인류의 적을 만나, 공황상태에 빠져있다. 지금까지의 세계역사가 보여주듯, 우리인류는 지금 미래 방향을 좌우할 결정적 갈림길에 서있다.

 

  이미 많은 도시와 국가들이 현재의 의료체계와 방역체계로는 현재의 감염속도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한국을 중심으로 공통의 해법을 찾기 위해, 대화하고 공유한다면, 참담하기만 한 이 상황을 하루라도 빨리 종식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조심스레 가져본다. 이제 우리 70억 인류는 고전을 통해 역사를 되돌아보고 선조들의 지혜를 경험으로 삼아, 작지만 평범한 개인의 삶과 자유를 되찾기 위해, 고통을 분담하는 사회적 합의와 동참이 필요하며, 세계인류가 ‘운명공동체’라는 새로운 접근방식을 취해야하는 시점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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