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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미네르바minerva 2020. 12. 20.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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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종 거대한 역사적 사건이 기념비적 작품을 낳는 경우가 있다. 한국문학사에도 이처럼 역사적 변화를 촉발하는 기념비적 작품들이 몇 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 이하 <난쏘공>)이 그렇다.

출처 네이버

  자본주의의 모순을 풀어 내고 진정으로 인간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주체적인 노동자 계급을 통한 자본주의적 모순의 극복이라는 <난쏘공>식의 문제틀은 이후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의 민중운동의 문제틀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한마디로 <난쏘공>은 모든 구성원들의 행복이 보장되는 세계라는 기존의 친숙한 세계상을 부정하고 오로지 소수의 존재들만이 행복한 세계라는 전혀 낯선 세계상으로 전도시키고, ‘사실주의적 시선과 비사실주의적 방법의 병존’이나 ‘이차원의 전망’등의 개념이 동원된다.

 

  기존의 담론체계를 설득력 있게 부정하고 해체한 후에 그 안에서 새로운 중심을 서서히 제시하기 때문에, 1970년대 중반이후 한국사회를 규정하는 틀로 작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난쏘공>은 12편의 단편이 서로 독립되면서도 유기적으로 얽혀있는 연작장편소설이다.

  ‘낙원구 행복동’이라는 도시외곽에서 도시 재개발로 인해 자신들의 삶의 거처에서 쫓겨나면서 몰락해가는 ‘난장이 일가’의 저항과 그 주변 인물들의 다양한 반응을 통해 산업화 시대에 접어든 한국사회의 모습을 나름의 시각으로 반영한다.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뫼비우스의 띠>를 통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과 악, 진리와 거짓 같은 것이 매우 불철저한 것이므로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해서는 기존의 상식을 넘어서서 보다 넓은 관계 속에 사물을 위치시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1970년대 도시재개발 출처 네이버

 

  ‘낙원구 행복동’은 유토피아와는 어떠한 관련도 없는 홀로 떠다니는 기표이며, 실제적 현실을 왜곡하는 화려한 추문일 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태어나는 그 순간에 삶의 방향이 결정되는 예정조화의 사회이며 이 운명은 어떠한 노력을 통해서도 뒤바뀌지 않는다. 첫 번째 계급은 수많은 소외된 계층을 볼모로 삼아 물질적 풍요를 구가한다. 또 다른 부류는 최소한의 욕망마저도 박탈당한 채 그저 하루하루를 연명하며 살아가는 ‘난장이’들이다. 이들에겐 동물과도 같은 삶을 견뎌 내며 서서히 죽어가는 것과, 복수를 꿈꾸는 것, 양자택일만이 가능하다.

 

  <난쏘공>의 후반부는 ‘클라인씨의 병’을 통해 “안이 밖이고 밖이 곧 안”인 “이 세계에서는 갇혔다는 것 그 자체가 착각”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새로운 중심의 정립이 이전의 보편성을 해체하는 것은 물론 인류 전체가 진정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라고 믿기에 이른 것이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지만, 지옥에 사는 사람은 단 하루도 천국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지기만 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1970년대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 소외되고 가난한 도시 철거민의 아픔을 묘사하기 위해 창작되었다. 이글에 나오는 난장이는 소위 요즘말로 태어날 때부터 ‘흙수저’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 간극을 좁힐 수가 없는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면이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그런 흙수저들이 사회적으로 핍박받으면서도 그들을 지켜주는 것 또한 사랑이다. 난쟁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아울러 그들이 꿈꾸는 행복한 사회 역시 서로간의 사랑과 도덕성이 지켜지는 사회인 것이다.

 

  가난하다는 것은 어느 한 개인이 못나서가 아니라,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가 없는 사회라면, 그 사회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 가난이 되물림 되어, 요즘 삼포 사포를 넘어 육포세대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학업, 취업, 연애, 결혼, 출산 +저축까지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두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써, 아이들에게 어떤 희망의 메시지를 주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부모가 모든 것을 포기하거나 절망하는 모습만은 보이지 말자.

 

 그래야 아이들도 걸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과, 목표를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내일을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삶이지만, 그래도 접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알게 되고, 변화할 수 있는 기회또한 잡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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